작은가게가 있는, 방배동

희망가게 골목여행이란?

글 쓰는 진과 그림 그리는 솔이 희망가게가 있는 골목길을 찾아가는 여행에세이로, 이번에는 희망가게 <아름다운 피부·체형>이 있는 서울시 방배동을 찾았습니다.

도시 산책

걷기는 세계를 느끼는 관능에로의 초대다. 걷는다는 것은 세계를 온전하게 경험한다는 것이다. 이때 경험의 주도권은 인간에게 돌아온다. 기차나 자동차는 육체의 수동성과 세계를 멀리하는 길만 가르쳐 주지만, 그와 달리 걷기는 눈의 활동만을 부추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목적 없이 그냥 걷는다. 지나가는 시간을 음미하고 존재를 에돌아가서 길의 종착점에 더 확실하게 이르기 위하여 걷는다. 전에 알지 못했던 장소들과 얼굴들을 발견하고 몸을 통해서 무궁무진한 감각과 관능의 세계에 대한 지식을 확대하기 위하여 걷는다. 아니 길이 거기에 있기에 걷는다. (걷기예찬, 다비드 르 브르통, 현대문학)

도심 속 숲길 걷기, 서리풀 공원

걷기는 걷는 일이다. 두 다리를 움직이는 육체적인 활동이다. 목적과는 무관하며,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반면 산책은 육체적인 동시에 정신적인 활동이다. 의식이 각성된 상태로, 목적지로 향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걷기 자체가 목적이다. 산책은, 우리를 일상에서 벗어나 ‘숨을 가다듬고’, 시간을 나의 것으로 길들이는 고요한 세계로 이끈다. 고속터미널에서 시작해 방배까지 세 개의 공원을 잇는 산책로는 도심에서 만날 수 있는 최적의 장소 가운데 하나다. 서래마을에 있는 몽마르뜨 공원을 중심으로 누에다리 건너 북동쪽, 고속터미널 방면으로 서리골 공원이 있고, 서리풀다리를 건너 남서쪽, 방배 방면으로 서리풀 공원이 있다. 나지막한 산으로 모두 걸으면 3킬로미터가 조금 넘는다. 산책의 끝에, 방배동에 닿는다. 한 번도 와 본 적 없는 곳이다. 

고요한 도심속 산책로
할아버지 쉼터로 가는 길
서리풀 공원에서 만난 결과 조각

방배동의 동네 가게들

몇 년 전 방배 말고, 배방에 살았던 적은 있다. 아산까지 지하철 1호선이 이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많지 않을 때였다. 배방역 근처, 시골치고는 아파트가 꽤 많이 들어선 동네였다. 어디 사세요? 라는 질문에 배방역 근처에 산다고 하면 사람들은 종종 방배와 착각하고는 좋은 데 사시네요, 라고 했다. 좋습니다. 거긴, 집만 나서면 논이 보이거든요.

언덕길을 따라 올랐다. 아파트보다는 연립주택이 많이 들어서 있었다. 동네 구경이라고 해야 특별할 건 없었다. 한적한 주택가를 탐험해 이런 데까지 찾아올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았다. 배가 출출했던 우리는 노란 차양이 내려진 동네 빵집, 어니스크에 들어갔다. 정직하게 빵을 만들고 굽겠다는(Honestly + Make + Bake) 가게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송풍기에서 바람이 쏟아져 나왔다. 문 바로 앞에 빵을 고르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한 걸음 성큼 들어서기도 버거운 조그만 빵집이었다. 앞 사람이 빵을 골라 옆 계산대에 서야 다음 사람이 빵을 고를 수 있었다. 나와 쏠이 빵을 고르는 중에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더 들어왔다. 바람이 쏟아졌다. 그 사람은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서 있었다. 바람이 멈추자 가게안이 만원버스처럼 갑갑하게 느껴졌다. 빵을 부탁해, 쏠. 나는 밖에 있는 야외 테라스에 앉았다.

언덕길을 따라 오르는 동네산책 
짙은 도시의 배경을 만들어 내는 연립주택의 벽돌들
방배동 동네 꽃집
방배동의 동네 빵집, 그랑부아
방배동의 동네 빵집, 어니스크

 

어떤 사람은 집에서 늑장부리다 아점으로 빵을 사러 온 듯했고, 어떤 사람은 차를 몰고 떠나기 전에 요기를 위해 빵을 사러 온 듯 했다. 평범한 동네, 그리고 동네 빵집의 주말 아침 풍경이었다. 나와 쏠만 동네의 풍경에서 조금 빗겨난 모습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대화도 한참을 빗겨나 있었다.

 
쏠 : 여기는 집값이 싸겠지? (부쩍 부동산에 관심이 많아졌다)
윤 : 비싸겠지. 서울 강남인데.
쏠 : 그래도 아파트보다는 싸겠지?
윤 : 아파트보다는 싸겠지. (사실 잘 모른다)
 
자리에 앉아 빵을 먹으며, 우린 고작 저런 1차원적인 대화를 하고 있었다. 벽 한켠엔 빵집이 소개된 여러 기사들이 인쇄되어 붙어 있었다.(역시 서울이었다. 맛이 있고 특색이 있다면, 숨어있다시피 한 조그만 동네 빵집도 샅샅이 뒤져 소개한다.) 소금이 적게 들어가거나 아예 들어가지 않은 빵을 만든다고 했다. 사단법인 싱겁게먹기실천연구회(이런 곳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에서는 이 빵으로 싱겁게 먹어야 하는 환자들에게 샘플 테스트를 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어니스크가 알려주는 ‘빵을 맛있게 먹는 법’
어니스크의 빵들 : 후르츠브리오슈와 허니까망베르
맛있게 구워진 식빵들

 

+ 어니스크(02-521-0010) 서울특별시 서초구 효령로25길 27

+ 영업시간 : 07:00~22:00, 연중무휴

아름다운 희망가게, 아름다운 피부·체형

 동네 빵집을 나와 희망가게 51호점, <아름다운 피부·체형>으로 향했다. ‘만원의 행복’이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만원으로 무얼 할 수 있을까? 얼굴 마시지와 1·2차 마스크, 시간은 40분 걸린다. 쏠이 가격에 놀란다. 관리사 시급에 재료비, 가게 임대료, 관리비 제하고 나면 남는 것도 없겠어요, 사업경험도 없으면서 어디서 주워들은 얘기를 하며 걱정하자, 윤정희 창업주님이 ‘만원의 행복’은 홍보비라 생각한다고 하셨다. 홍보비요? 홍보비를 따로 들이느니 남지 않더라도, 가격을 최대한 낮춰 손님들을 끌어들이고,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판단이었다. 그럼 입소문도 많이 나게 되고, 서비스가 괜찮으면 만원의 행복 서비스 말고, 다른 서비스들도 받게 되니,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했다. 사업에 대한 감각이 남달랐다.

방배 아크로타워 2층에 위치한 <아름다운 피부·체형>

 

피부관리실에는 창업주님 외에도 피부관리사 세 분이 계셨다. 일을 처음 시작할 때에도 사람을 고용해 함께 일했다. 혼자 일하면 힘들어 고객들에게 제대로 된 서비스를 할 수 없다며,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해도 손님들에게 전해지게 마련이라고 했다. 고객들에게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그것이 창업주님이 생각하는 사업의 ‘기본’이었다.

윤정희 창업주와 피부관리사 분들,
<아름다운 피부·체형> 실내
<아름다운 피부·체형> 실내

 

+ 아름다운 피부·체형(02-584-4189)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동 923-6 2층 제 208호

+ 영업시간 : 평일(10:00~20:00), 주말(10:00~16:00), 예약 필요

<아름다운 피부·체형> 윤정희 대표를 만나다

 

진 : 희망가게를 처음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윤정희 님 : 아르바이트 일을 하고 있을 때였어요. 마이크로 크레딧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모레퍼시픽 향장지(화장품 홍보지)에서 처음으로 봤어요.

 

진 : 피부관리실을 하기로 마음먹으신 이유가 있나요?

윤정희 님 : 피부관리실이 경쟁이 치열해요. 그래서 전망이 안좋다고 하시는 분도 많았어요. 피부과 병원과 의료 산업, 유통구조를 알지 못하면 어려워요. 저는 그 분야에서 일을 해왔거든요. 젊었을 때 취득한 피부관리사 자격증도 있고, 그래서 피부관리실을 열었어요.

 

진 : 피부관리실 원장님이라 그런지 피부가 정말 좋으신데요, 아무래도 사업을 하는데 있어 장점이 되겠어요.

윤정희 님 : 제가 처음엔 피부가 정말 안 좋았어요. 가게를 열었을 때 정말 힘들었거든요. 손님들이 알아요. 초기부터 오신 단골손님 분들이 계신데, 처음엔 제가 웃어도 웃음 뒤에 그늘같은 게 느껴졌다고 하시더라고요. 얼굴이 갈수록 좋아진대요.

 

 

진 : 희망가게를 하시는 분들 간에 희망회라는 모임에서 2대 총무를 맡고 계신다면서요?

윤정희 님 : 네, 재단에서 한 달에 한 번 정도 모임이 있어요. 아이들 대소사도 서로 많이 알고 지내요. 무척 편하고 가족같이 느껴져요.

 

진 : 다른 분들에게도 희망가게를 많이 권하시나요?

윤정희 님 : 많이 권해요. 관심 있어 하는 사람 있으면 사람들이 저한테 이야기 해줘요. 그럼 제가 가서 설명하고, 지원서도 같이 작성해줘요. 많이 권하고는 있는데, 지원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아요. 다 작성하고도 제출을 못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겁이 나서. 가게가 망하면 어떡하지? 직장을 다니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 때문에요. 어쩌면 그 분들은 벼랑 끝에 서 있는 게 아니라 그럴지도 모르죠. 희망가게에 오는 사람들은 벼랑 끝에 서 있던 분들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윤정희 님은 지금 운영하고 있는 가게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보다 넓게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이 가이드 역할을 해서 다른 분들 창업을 돕고 싶다고 했다. 피부관리실이 레드오션처럼 보여도, 실은 잠재 수요가 많아 ‘만원의 행복’처럼 가격 턱이 조금만 낮아지면 찾아올 사람들이 많을 거라 했다. 잠재 수요도 많고, 잠재 공급도 많으니, 조직적인 힘을 갖추면 크게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날 보니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와 함께 온 아저씨 한 분도 피부관리를 받고, 윤기있고 팽팽한 얼굴로 가게를 나섰다. 낯선 모습이었지만, 나중에는 그것이 평범한 풍경이 될지 모르는 일이다. 

 

글. 윤진 | 그림. 이솔

[기획연재] “희망가게 골목여행”

꽃피는 봄날, 원주에 가다

 

<희망가게>
저소득 한부모 여성가장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무보증 신용대출(마이크로크레딧)방식으로 창업을 지원합니다. 2004년을 시작으로 2014년 5월 현재 수도권을 비롯하여 원주, 춘천, 대전, 천안, 청주, 대구, 경산, 구미, 포항, 광주, 목포, 부산, 김해, 양산에 이르기까지 210여 곳의 사업장이 문을 열었습니다. 나눔의 선순환을 지향하는 희망가게, 창업주들이 매월 내는 상환금은 창업을 준비하는 또 다른 여성가장의 창업자금으로 쓰입니다.

<아름다운세상기금>
서경배(아모레퍼시픽 대표) 님를 비롯한 그 가족은 2003년 6월 한부모 여성가장의 경제적인 자립을 지원하는 <아름다운세상기금>을 조성하였습니다. 이 기금은 우리 사회 가난한 어머니들과 그 자녀들이 건강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길 바랬던 장원 서성환(아모레퍼시픽 창업주) 님의 마음과 고인에 대한 유가족의 존경이 담겨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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