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오후
종로 옥인동 아름다운재단 사무실에 갑자기 옥수수 박스가 쌓였다.
한 기부자님이 아름다운재단 간사들에게 보내 주신 것.
농촌활동 가셨던 기부자님, 그 곳 농가의 옥수수를 대량(?) 구매해 보내주신거라 했다.
간사들은 저마다 충족가능한 양 만큼의 옥수수를 가져갈 수 있었다.
나는 10개를 받았다.
옥수수 도착, 5시간 경과
옥수수라면 모름지기 옥수수처럼 생겼을텐데 왠지 얼굴 한 번 보고싶다. 아직 옥수수를 마주하진 않았지만 일단 기분이 풍족하다. 오늘따라 에너지가 왠지 샘솟는다.
옥수수 도착, 6시간 경과
맙소사. 너무 튼실한 옥수수다.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다.
옥수수 도착, 6시간 하고 1분 경과
10개를 챙겨 보니 너무 많다. 마침 동료 간사님이 옥수수를 못 받으셨단다. 그 말을 하시는 모습이 뭔가 짠하다. 냉큼 다섯 개를 나눠드렸다. 자취생이시라 더 기쁘신걸까. 나도 받은건데 괜시리 뭔가 베푼 기분이다.
옥수수 도착, 7시간 경과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 나는, 우리집 건너편에 자취 중인 친구 하나가 떠올랐다. 퇴근길에 들러 두 개를 나누어 주었다. 친구가 격하게 기쁨을 표시한다. 옥수수는 점차 줄어들고 있지만 좋다.
옥수수 도착, 8시간 경과
집에 들어오자마자 옥수수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금과 설탕을 조금 넣고 압력밥솥에 넣었다. 금새 김이 나고 고소한 냄새가 집안을 풍기기 시작했다. 하나는 내가 먹고, 언니와 동생에게도 하나씩 배급했다. 무지하게 맛있게 먹는다.
이제 남은 옥수수는 몇 개?
답 = 0개
그러나 마음의 속 옥수수는 무한대
10개의 옥수수를 나누어 받아, 무려 네 명의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다.
남은 한 개만 먹었는데도 가장 맛있고 배부르게 옥수수를 먹은 것이다.
그리고 오랜만에 옥수수를 먹으니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이 난다.
할아버지는 어린 손녀딸이 울면 찐 옥수수 한 알을 앞니에 끼우고 씨익 웃으셨다.
그 모습을 보고 언제 울었냐는 듯 깔깔거리며 웃던 어린시절이 생각난다.
탱글탱글 박혀 있는 옥수수처럼
싱글녀 생활 속에서, 사람과 사람 관계 속에서, 고인과의 추억 속에서 나눔을 본다.
글 | 이수연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