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막막할 때 기회 줬어요” ㆍ이혼 후 아이 키우며 미용실 연 박혜진씨 ㆍ여성가장 지원 ‘희망가게’ 100호점 돌파 “이제는 꿈을 꿀 수 있게 됐어요. 아이들에게도 밝고 건강한 엄마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박혜진씨(39)는 4년 전 남편이 빚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광주에서 8년간 운영해오던 미용실을 잃었다. 가정 불화가 이어졌고 결국 이혼했다. 그때 박씨의 배 속에는 둘째 딸이 자라고 있었다. 울지 않고 잠드는 날이 없었다. 1년 반 전 박씨에게 남은 것은 원룸 보증금 300만원뿐이었다. 미용실에서 일했지만 월급이 적어 아이둘과 함께 살기 힘들었다. 무작정 서울로 올라가 상공회의소를 찾았다. 대출 조건이 안된다는 사실만 확인했다. 돌아서는 그에게 직원이 아름다운재단의 ‘희망가게’를 알려줬다. 곧바로 광주 북구의 아름다운재단을 찾아갔다. 재단에서는 아무 조건 없이 4000만원까지 빌려준다고 했다. 가슴이 떨렸다. 사기당하는 게 아닌가 걱정이 들 정도였다. 사흘 만에 서류 10장을 들고 다시 재단을 찾았다. “고맙다”는 말이 자꾸 나왔다. 그는 “얼마나 절실했는지 모른다. 희망가게는 내 인생에 찾아온 첫 번째 기회였다”고 말했다. 박씨는 그렇게 자신의 미용실을 다시 찾았다. 아름다운재단은 “가난을 되물림해서는 안된다”는 취지로 2004년 한부모 여성 가장의 창업을 지원하는 희망가게 사업을 시작했다. 맏자녀가 19세 이하면 신용등급과 상관없이 최대 4000만원까지 지원해준다. 희망가게 창업주들은 아무 담보 없이 빌린 창업자금을 5년 동안 분할 상환한다. 임차보증금은 7년 동안 무상으로 지원한다. 이자는 나눔을 실천한다는 의미의 2%가 전부다. 희망가게는 최근 100호점을 열었다. ‘희망가게’의 생명은 사후관리다. 창업자금을 지원하면 그만인 대부분의 정부 사업과 달리 심리·정서적 지원, 법률상담 지원 등을 연계해 사업 안정화를 돕는다. 폭력남편으로부터의 신변 보호, 자녀와의 갈등 상담 등 가족문제에 대한 체계적 지원도 병행한다. 박씨도 희망가게 간사들과 월 1회 이상 만나 경영 추이를 상담하는 등 사후관리를 받았다. 박씨의 삶은 많이 달라졌다. 지난 1월에는 76㎡(23평) 규모의 방 두 개짜리 아파트에 이사했다. 석 달에 하루씩은 그날 매출 전액을 기부한다. 그는 “나처럼 어려운 엄마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싶어 시작한 일”이라며 “아름다운재단은 저에게 친정 같은 존재다. 무엇이든지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박씨는 아름다운재단을 의미하는 ‘나비 로고’를 단 매장을 늘려가는 꿈을 꾸고 있다. 올해 중학생이 된 큰딸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냐”는 선생님 질문에 “엄마처럼 용기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대답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뭉클했다. 그는 “엄마로서 자신감이 커졌다. 감사하는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아름다운재단은 2004년부터 2011년 5월 현재까지 여성 102명에게 약 36억원을 지원했다. 그동안 창업한 희망가게에 빌려준 돈이 다시 되돌아와 ‘아름다운세상 기금’으로 재적립되고 있다. 2011년 6월 19일 <임아영 기자 layknt@kyunghyang.com> |
[조선일보] “프레임 속 여성 家長은 편견과 싸우는 女戰士”한부모 여성가장 희망을 담아낸 조선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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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내 엄마 닮은 싱글맘들에게 ‘희망선물’ 줄래요” 한부모 여성가장 29명 모델 삼아 “싱글맘들이 ‘여전사’처럼 자신만의 무기를 들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담고 싶었어요.” 장동건·비·장나라 등 유명 연예인들의 화보를 주로 찍어온 사진작가 조선희(41·사진·경일대 교수)씨가 29일 서울 인사동 노암갤러리에서 이색 사진전 ‘희망가게, 두개의 상상(象)’을 개막한다. 이 전시는 아름다운재단이 2004년부터 문을 연 ‘희망가게’ 100호점을 열면서 기획됐다. 희망가게는 한국형 무담보 소액대출(마이크로 크레디트) 사업으로, 재단은 한부모 여성 가장들에게 1인당 4000만원까지 창업자금을 대출해준다. ‘희망가게 사장들’을 찍은 이 작업에 대해 조씨는 “그들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고, 6살짜리 아들을 둔 어머니로서 동질감도 느꼈다”며 “우리 어머니도 아버지를 여의고 홀로 다섯 남매를 키우셨기 때문에 남일 같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조씨는 80여일 동안 서울·대구·대전·부산·광주·경기 등을 돌며 음식점·미용실·세차장·재활용센터 등을 운영하는 29명의 여성 가장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스튜디오에 불러 헤어·메이크업을 한 뒤 재촬영도 했다. 까다로운 4×5인치 대형 필름카메라를 썼고, 그들의 ‘무기’인 국자, 다리미, 식칼, 가위 등도 조명 아래에서 정성껏 찍었다. 그 결과 카리스마 넘치면서도 미묘한 여성 가장들의 시선이 한국 페미니즘 사진사에 기록될 만한 작품으로 탄생했다. 희망가게 사업 또한 ‘재탄생’을 낳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창업자 고 서성환 회장의 가족들이 기탁한 유산 중 일부가 씨앗이 된 이 기금으로 8년 만에 전국 100곳의 가게가 생겼고, 이들의 평균 생존율은 80%에 이른다. 상환금은 또다른 여성 가장들의 창업을 돕는다. 도돌이표처럼 여성들이 다른 여성들을 돕는 셈이다. 이 ‘여전사들의 도돌이표’에 뜻을 보태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는 조씨는 “전시 준비를 하면서 세상과 더불어 살아가야 된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02)3675-1240. 글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사진 조아조아스튜디오 제공 |
[MBC NEWS] 여성 창업지원 프로그램 ‘희망가게’ 100호점 ◀ANC▶ 남편과 이혼 또는 사별한 뒤 혼자 자녀들을 힘들게 키우는 여성들에게 창업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생긴 가게를 ‘희망가게’라 부르는데요, 지난 2004년 1호점이 생긴 이후 어느새 100호점이 생겼다고 합니다. 양효걸 기자입니다. ◀VCR▶ ◀ EFFECT ▶ 밀려드는 주문에 재료를 준비하고, 양념을 버무리고, 튀기고 직접 오토바이로 그래도 최씨에게는 7년 전 남편과의 이혼, 이제는 아름다운 재단의 도움을 받아 ◀INT▶ 최경인/’희망가게’ 100호점 운영 희망가게 3호점을 7년 전 가게 문을 처음 열 때만해도 ◀INT▶ 김복남/’희망가게’ 3호점 운영 지난 2004년부터 시작된 생활 의지와 사업성을 이렇게 빌려줬던 돈이 ◀INT▶ 윤정숙/아름다운 재단 상임이사 한 기업인의 기부로 시작된 MBC뉴스 양효걸입니다 |
[통신사] ‘희망가게’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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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눈물 속의 기념식…여성가장들 희망의 끈을 잡다
“지금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의 소원은 빨리 커서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돈을 버는 것이었어요.”
“아이를 낳고 3개월 후부터 쉬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마이크를 잡은 사람도, 그들의 말을 듣는 사람도 눈물을 흘렸다. 행사 진행 요원들의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하루 종일 장맛비가 내린 지난달 29일 오후 4시. 서울 종로구 인사동 노암갤러리에서 여성 가장들을 위한 ‘희망가게’ 100호점 개업 기념식이 열렸다. 희망가게는 생계가 어려운 여성 가장들에게 창업 자금을 대출해주는 마이크로 금융 프로그램(상자기사 참조). 아름다운재단이 가구당 최고 4000만 원을 연리 2%에 융자해 준다. 희망가게는 2003년 고(故) 서성환 아모레퍼시픽 창업자 유족들이 기부한 50억 원으로 출발했다. ○ 만물상 하며 5남매 키운 어머니 이날 행사는 희망가게 100호 개업을 기념한 사진작가 조선희 씨의 전시회(‘희망가게, 두 개의 상像’)와 함께 열렸다. 조 씨는 광고와 연예 분야에서 손꼽히는 사진작가다. ‘연예인이 가장 선호하는 사진가’로도 불린다. 그는 4월 17일부터 전시회 직전까지 70여 일 동안 전국에 있는 희망가게 여사장 29명의 사진을 찍었다. 기념식 4번째 연사로 그가 앞으로 나섰다. “대구에서 첫 촬영을 하고 두 번째인가 세 번째였던 것 같아요.” 갑자기 그가 목이 메어 말을 하지 못했다. 가까스로 감정을 다잡고 말을 이어갔다. “아이들 셋과 할머니가 계시는 미용실이었어요. 순간 우리 어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조 씨의 어머니는 그가 중학교 1학년일 때 혼자 몸이 됐다. 마흔둘, 지금의 그보다 딱 한 살이 많을 때였다. 어머니는 경북 왜관 시장에서 만물상을 하며 5남매를 키웠다. “저도 한부모가정에서 컸거든요. 25년 동안 장사하는 어머니를 보고 자랐어요. 저희 집에선 양말부터 속옷, 물엿까지 안 파는 게 없었어요. 하지만 처음엔 프로젝트를 거절하려고 했습니다. 전국을 다 돌아다녀야 하는 데다, 또 한번 하면 잘해야 하잖아요. 심적인 부담이 컸습니다. 그렇지만 일하는 여자, 한 아이의 엄마로서 이런 일은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진을 찍다 보니 열정에 더 불이 붙었다. 그는 다른 스케줄을 거의 미뤄둘 만큼 희망가게 프로젝트에 매달렸다. 자신의 어머니처럼, 세상에 맞서 가족을 지키는 어머니들의 모습을 찍고 싶었다. 그래서 처음 찍었던 두 사람의 사진을 다시 촬영했다. ‘너무 예쁘게’ 나왔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한부모가정 출신이다 보니 희망가게 여사장들에 대한 이해도 깊었다. “희망가게는 싱글맘의 인생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삶까지 바꿀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나쁜 길로 빠지지 않고, 더 긍정적이고 큰 사람이 되게 돕는 것이죠.” 조 씨의 말은 우연히도 잠시 후 아름다운가게 상임이사인 윤정숙 씨에 의해 추가로 설명됐다. 윤 씨는 ‘가난은 여성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미국의 보건 행정가 헬렌 게일 씨의 말을 인용했다. 여성 가장이 빈곤의 중심에 있다는 뜻이다. 여성 한부모가정의 아동 빈곤율은 평균의 3배, 소득은 남성 가구주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희망가게 프로젝트가 생긴 이유다. 게일 씨는 “가난은 여성의 얼굴에만 새겨지는 게 아니라, 그들이 낳은 자녀들에게도 낡은 옷처럼 대물림된다”고 지적했었다. ○ 희망가게 89호 미용실의 사연 문현정 씨는 광주 광산구에서 미용실을 운영한다. 조선희 씨의 눈시울을 붉히게 만든 사람이 바로 문 씨다. 그는 2009년 남편 사업 실패와 그로 말미암은 음주, 외도로 가정불화가 생겨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했다. 지금 24개월인 막내가 태어난 직후였다. 남편은 이혼판결이 나기도 전에 전셋돈을 빼갔다. 문 씨와 갓난아기, 지금은 초등학생, 중학생인 두 딸은 갈 곳이 없었다. 수중에 남은 돈이 한 푼도 없었다. 과거를 정리하겠다는 마음으로 남편에게 모든 것을 내줬기 때문이었다. 문 씨가 운영하던 미용실을 처분한 돈은 이미 남편의 사업 밑천으로 들어간 후였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는 10월 말인가, 11월 초 즈음이었다. 보다 못한 스리랑카 출신 외국인 노동자가 고향에 보내려고 모은 ‘피 같은 돈’ 500만 원을 빌려줬다. 예전에 몸을 다쳤을 때 문 씨가 큰 도움을 준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네 모녀는 그 돈으로 몸을 누일 거처를 마련했다. 미용실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생계를 꾸려가던 그에게 희망의 빛이 다가왔다. 복지관 직원이 희망가게란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것이다. 당장 신청을 해서 서류심사와 면접을 통과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초 희망가게 89호인 미용실을 열었다. 중학생 큰딸은 엄마를 무척 자랑스러워한다.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는 딸은 기말고사를 빠지고 희망가게 행사에 오려고 했다. 기차를 타고 서울에 오려면 시험을 볼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실력이 아깝다는 담임선생님의 만류로 엄마와 딸들(중학생 큰딸과 초등학생 둘째 딸)은 난생 처음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표는 할부로 끊었다. “장사는 잘되세요”란 기자의 질문에 문 씨는 “우리 동네에만 미용실이 10곳이나 돼요. 단골들 덕분에 그냥저냥 유지는 하죠”라고 답했다. 그의 미용실은 세 딸과 어머니의 생계를 책임져 주는 소중한 삶의 터전이다. 생활은 어느 정도 안정이 됐지만, 문 씨는 어머니가 자꾸 마음에 걸린다. 그의 어머니는 딸의 이혼 소식을 듣고 쓰러진 후 치매를 앓고 있다. 모든 기억이 쓰러진 그날을 기점으로 멈췄다. “미용실로 돈을 벌어 얼마 전에 중고차를 샀어요. 쉬는 날이면 어머니랑 김밥 두 줄을 사서 짧은 여행을 갑니다. 너무 마음이 아프고 죄송하지만 이젠 어머니의 치매가 남은 시간 동안 효도하라는 뜻인 것 같아요.” 어머니가 7월부터 데이케어 센터에 나간다며 기뻐하는 그녀에게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 구경이나 하시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서울 지리를 몰라서…”란 대답이 돌아왔다. 다음 날 전화를 하니 기차 시간 때문에 제대로 구경을 못했다고 했다. 그래도 아이들은 서울 나들이를 좋아했다고 한다. “어머니와 아이들이 제겐 큰 힘이 됩니다. 희망가게는 어두운 터널 속에 있던 제게 새로운 빛을 주었고요. 이젠 행복하게 살 자신이 있습니다. 저와 같은 여성들에게 희망가게가 좀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