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가게 창업지원 신청서를 읽다보면 많은 지원자들의 한부모여성가장이 된 사연들을 자연스레 접하게 됩니다. 병, 사별, 폭력, 외도, 도박, 알콜로 인한 이혼 그리고 비혼 출산 등..개개인의 사적인 정보이기에, 또 그 내용이 결코 유쾌한 일들은 아니기에 이 이야기는 항상 조심스럽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저 단어들만 보고 ‘별로 읽고 싶은 이야기는 아니군’ 하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희망을 외치는 <희망가게>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아프고 불편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먼저 제가 최근에 읽은 윤대녕 작가의 단편소설집 <도자기박물관>에서 읽은 부분을 같이 나누고 싶습니다.
딸은 어머니의 운명을 닮는다는 닳고 닳은 속설이 있습니다만, 내가 그 경우에 해당될 줄은 참으로 몰랐습니다. 남편은 허구한 날 바람을 피우면서도 오히려 당당하게 나에게 군림하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왜지요? 라고 물으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당신이란 여자는 마음이 모질고 집요한데다 거칠기까지 하더군.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회초리를 얻어맞는 것처럼 깜짝깜짝 놀라 눈을 감아버리곤 했습니다. 아무 대꾸도 못한 채 말입니다. 왜냐고요? 그것은 바로 나의 아버지라는 사람이 나의 어머니에게 상습적으로 퍼붓던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를 닮아 참을성이 대단했던 나는 남편이 바람을 피우거나 말거나 방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또 남편을 못 견디게 했던 모양입니다.
『비가 오고 꽃이 피고 눈이 내립니다 中, 윤대녕』
꼭 저런이유만 있는건 아니지 않냐구요. 다른 사유로 인해 한부모가족이 된 분들이 듣는다면 이런 반감이 드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서 그것을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당연히 숫자가 큰 만큼 한부모가족의 형태와 범주는 매우 다양하고 폭이 넓습니다. 따라서 이 다양한 이야기들을 한 가지 이야기로 묶고 해결하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입니다. 예를 들어 사별로 인한 한부모가족과 미혼모는 매우 달라, 설명할 때 꼭 분류해서 설명해야 더 이해가 쉬운 것 처럼요.
제가 오늘 말하고 싶은 것은 <희망가게>의 성공한 창업주가 아니라, 많은 사연들과 인생의 굴곡을 경험한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이 불편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 이유를 굳이 말하자면 한부모가족은 이제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고모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내 친구의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웃의 이야기라는 것이죠.
사회에 남아있는 한부모가족에 대한 부정적 인식들과 편견들을 없애기 위한 답이, 무조건 긍정적이미지를 마구 퍼트리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때로는 고통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 그것의 심각성과 진실함을 전달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으신지요. 여성관련문제들을 개인적차원이 아니라 사회적차원으로 확산시키자라는 의미인데 저는 특히 이 문제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제발 해결되었으면 하고 간절하게 바라는 문제이기도 한데, 그것은 ‘매맞는 여성’, 즉 ‘폭력피해여성’에 대한 문제들입니다.
첫 번째 구타가 있던 날 나는 이혼을 결심했습니다. 폭력의 속성은 아무래도 대항할 조건을 갖추지 못한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행해지는 데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서든 더 이상 그것을 감내할 이유가 없는 것이지요.
이혼하는 과정도 쉽지 않아 그만 몸과 마음이 폐허처럼 변하고 말았습니다. 자멸감에 빠진 나는 지금으로 판단하면 정신과 치료부터 받았어야 했는데, 오히려 서울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춘천으로 옮겨가 자신을 감금하듯 원룸에 처박히고 말았습니다.
『비가 오고 꽃이 피고 눈이 내립니다 中, 윤대녕』
<희망가게>사업은 한부모여성가장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창업지원을 하는 사업입니다. 힘든 시기를 모두 극복하고 자신과 자녀들의 꿈을 위해 도전하는 여성들이지요. 그녀들의 용기와 당당함을 먼저 보다보니 사실 자기소개서가 아니면 아픈 과거의 경험들을 떠올리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가끔 심사장에서 그 반대의 분들도 만납니다.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해 보이시거나, 사회생활이 힘들어 경력이 파 자르듯 짧게 이어진 분들입니다. 안타깝게도 이런분들은 다들 떨어지십니다. 한눈에 보아도 당장에 준비된 창업을 시도하기에는 무리인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희망가게>가 가지고 있는 큰 비전요소는 ‘자립성’과 ‘협력’입니다. 경제적자립을 위해 창업을 하고 또 우리는 많은 연대를 통해 이것을 돕습니다. 그러나 <희망가게>사업이 많은 한부모여성가장에게 자리매김하면 할수록 희망가게에 지원하지 못하시는 한부모여성가장에 대한 성찰은 점점하기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성공창업’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며 자문자답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직 저도 초짜간사라 그런지 뭔가모를 마음에 불편함이 있습니다.
<희망가게는> 준비된 창업자 그리고 심리적으로 극복이 된 여성에게는 ‘자립’의 지름길이 될 수는 있지만, 그렇지 못한 여성에게는 결코 ‘기회’가 아닌 또 하나의 답답한 ‘벽’입니다. 자립이라는 소박하지만 설레는 이 꿈을 모든 한부모여성가장이 모두 꿈꿀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아쉽습니다. 그만큼 가정폭력은 많은 한부모여성에게 강력한 문제들을 초래합니다.
다음은 브라질 비영리단체, 마리아 다 펜하 연구소((Instituto Maria da Penha)의 캠페인입니다. 여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참지말고, 폭력에 대한 피해 사실을 공개적으로 말하라고 합니다.
무엇이 더 효과적이고 적절한 방법인지는 전문가가 아니라서 모르겠으나, 서울시에서는 ‘여성안전도시만들기’의 일환으로 이러한 캠페인을 진행 한 것을 다들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요즘 읽고 있는 이 책의 작가는 이렇게 얘기하고 있네요.
고통은 언어화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찌 그 화염 같은 속내를 고작 말로써 드러낼 수 있겠습니까?
다만 그것을 통해서 누군가를 이해하는 단계로 나아갈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란 존재는 적든 크든 누구나 고통을 겪고 있으며, 그 때문에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는 오히려 무관심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는 서로에게서 차츰 멀어지게 됩니다. 적어도 내 경험으로는 그렇습니다.
『비가 오고 꽃이 피고 눈이 내립니다 中, 윤대녕』
고통은 언어화될수 없다지만, 다만 그녀들은 그 고통을 통해서 누군가를 이해하고, 서로 연대합니다. 또 치유하고, 또 그것을 삶의 또다른 동력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그녀들에 대해 자랑 한 가지만 더 하겠습니다.
창업지원 심사에 대한 조건들은, 사업성 외에도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희망가게에 선정되시는 창업주들은 하나를 더 가진 분들인 것 같습니다. 더 이상 과거의 아픔에 나를 묶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 아픔과 기꺼이 맞서고 다시 일어나는 사람, 나와 나의 가족을 사랑하고 또 지키겠다는 의지 때문에 말입니다.
수없이 많은 남자들의 무책임하고 괴상한 잘못들을 보다보면, 대한민국 여성들이 이겨내야 할 벽들이 아직도 참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녀들을 계속해서 응원하고 싶습니다. 한부모여성가장들이 차별없이, 또 그 자녀들이 상처없이 평범하게만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글 | 이수연 팀장
마음이 아프네요.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