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막막할 때 기회 줬어요”  
 
ㆍ이혼 후 아이 키우며 미용실 연 박혜진씨
ㆍ여성가장 지원 ‘희망가게’ 100호점 돌파

“이제는 꿈을 꿀 수 있게 됐어요. 아이들에게도 밝고 건강한 엄마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박혜진씨(39)는 4년 전 남편이 빚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광주에서 8년간 운영해오던 미용실을 잃었다. 가정 불화가 이어졌고 결국 이혼했다. 그때 박씨의 배 속에는 둘째 딸이 자라고 있었다. 울지 않고 잠드는 날이 없었다.

1년 반 전 박씨에게 남은 것은 원룸 보증금 300만원뿐이었다. 미용실에서 일했지만 월급이 적어 아이둘과 함께 살기 힘들었다. 무작정 서울로 올라가 상공회의소를 찾았다. 대출 조건이 안된다는 사실만 확인했다. 돌아서는 그에게 직원이 아름다운재단의 ‘희망가게’를 알려줬다.

곧바로 광주 북구의 아름다운재단을 찾아갔다. 재단에서는 아무 조건 없이 4000만원까지 빌려준다고 했다. 가슴이 떨렸다. 사기당하는 게 아닌가 걱정이 들 정도였다. 사흘 만에 서류 10장을 들고 다시 재단을 찾았다. “고맙다”는 말이 자꾸 나왔다. 그는 “얼마나 절실했는지 모른다. 희망가게는 내 인생에 찾아온 첫 번째 기회였다”고 말했다. 박씨는 그렇게 자신의 미용실을 다시 찾았다.

아름다운재단은 “가난을 되물림해서는 안된다”는 취지로 2004년 한부모 여성 가장의 창업을 지원하는 희망가게 사업을 시작했다. 맏자녀가 19세 이하면 신용등급과 상관없이 최대 4000만원까지 지원해준다. 희망가게 창업주들은 아무 담보 없이 빌린 창업자금을 5년 동안 분할 상환한다. 임차보증금은 7년 동안 무상으로 지원한다. 이자는 나눔을 실천한다는 의미의 2%가 전부다. 희망가게는 최근 100호점을 열었다.

‘희망가게’의 생명은 사후관리다. 창업자금을 지원하면 그만인 대부분의 정부 사업과 달리 심리·정서적 지원, 법률상담 지원 등을 연계해 사업 안정화를 돕는다. 폭력남편으로부터의 신변 보호, 자녀와의 갈등 상담 등 가족문제에 대한 체계적 지원도 병행한다. 박씨도 희망가게 간사들과 월 1회 이상 만나 경영 추이를 상담하는 등 사후관리를 받았다.

박씨의 삶은 많이 달라졌다. 지난 1월에는 76㎡(23평) 규모의 방 두 개짜리 아파트에 이사했다. 석 달에 하루씩은 그날 매출 전액을 기부한다. 그는 “나처럼 어려운 엄마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싶어 시작한 일”이라며 “아름다운재단은 저에게 친정 같은 존재다. 무엇이든지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박씨는 아름다운재단을 의미하는 ‘나비 로고’를 단 매장을 늘려가는 꿈을 꾸고 있다. 올해 중학생이 된 큰딸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냐”는 선생님 질문에 “엄마처럼 용기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대답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뭉클했다. 그는 “엄마로서 자신감이 커졌다. 감사하는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아름다운재단은 2004년부터 2011년 5월 현재까지 여성 102명에게 약 36억원을 지원했다. 그동안 창업한 희망가게에 빌려준 돈이 다시 되돌아와 ‘아름다운세상 기금’으로 재적립되고 있다.

2011년 6월 19일 <임아영 기자 laykn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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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프레임 속 여성 家長은 편견과 싸우는 女戰士”

한부모 여성가장 희망을 담아낸 조선희 작가
아름다운재단 희망가게 100호점 기념 홀로 아이 키우는 여성 애환 담아
“인생은 스스로 개척하라 말하던 어머니 이번 작업 시작한 계기였죠”

사진 속의 그들은 대부분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틀어 올린 머리 위에 예닐곱 개의 가위를 꽂고 짙은 눈매로 바라보고 있는 이는 미용실 사장이다. 장비들이 즐비한 세차장 한가운데 작업복 차림으로 한 손에 물 분사기를 들고 당당히 서 있는 사람은 세차장 사장, 기중기가 작동하고 있는 폐자제 더미 위에 절단기를 들고 서 있는 그는 재활용센터 사장이다. 29명의 사장이 모두 저마다의 도구를 들고 결연한 표정과 몸짓으로 카메라 건너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 사진 속 그들은 홀로 아이들을 키우며 가게를 꾸려가고 있는 ‘어머니’사장들이다. 

왼쪽부터 조선희 작가의 작품 사진 〈정주어패럴 류영화의 가위, FILM: KODAK 4X5 T-MAX 400〉, 〈양지그린세탁소 권정희 다리미, FILM: KODAK 4X5 T-MAX 400〉

 

“카메라 앞에 난생처음 모델로 서게 된 그분들에게 말했죠. ‘당신을 전사(戰士)라고 생각한다’고. 미용 가위, 족발용 식도, 세탁소 다리미 등은 무기인 셈이라고.”

사진작가 조선희(39·경일대 부교수)가 올 4월 중순부터 최근까지 전국을 돌며 한부모 여성 가장들의 창업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아냈다. 그는 “사람의 눈은 다 보는 듯하지만 원하는 것만 보는 반면, 카메라는 있는 그대로를 보여 준다”며, 사진가인 본인의 역할은 사람들이 보지 못한 걸 잡아내는 일이라고 했다. 이번 사진 작업의 대상이었던 그네들에 대해, 조 작가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세상과, 편견과 싸우는 사람들”이라 정의했다. 굳이 “싸운다”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그 어머니들의 삶이 치열하고, 폭발하는 에너지가 싸움에 준하기 때문”이란다.

한부모 여성 가장 창업주들을 담은 작품 사진 앞에서 당시 촬영에 쓰인 카메라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는 조선희 작가. 촬영=장덕화 작가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조 작가는 “나도 한부모가정 어머니의 딸”이라고 담담히 털어놓으며, 사진 속 희망가게 창업 여성들은 “나이고, 어머니이고, 언니”라고 했다.

조선희 작가의 이번 작업은 아름다운재단 희망가게 100호점 기념사업의 일환이다. 희망가게 사업은 한부모 여성 가장의 창업을 지원하는 무담보소액대출, 즉 마이크로 크레딧(Micro-Credit) 프로그램으로 2004년에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만 해도 마이크로 크레딧은 우리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방식이어서, 희망가게 운영팀은 대상자들에게 취지를 명확히 인지시키는 일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이전의 취약계층에 대한 단순 후원 방식이라 생각하고 찾아오는 사람이 많았지만, 갚아 나갈 의지 없이 출발하는 이들은 대부분 폐업이라는 결과를 얻기 때문이다.

운영팀에서는 “자영업 시장 100개 중 5개만 살아남는 현실 속에서 준비도 없이, 경쟁업체 파악도 없이 달려가는 창업은 상처와 부채만 가져올 뿐”이라고 못 박고 철저한 사전 준비와, 창업 컨설팅 전문가와 함께하는 후속관리를 체계화했다. 현재 희망가게의 창업 후 생존율은 80%이며, 2010년 12월에는 98.8%의 상환율을 기록하기에 이르렀다. 2010년 평균 상환율은 84%다.

생계와 아이들을 책임지고 있는 여성 가장들의 이야기, 그것은 조선희 작가에게는 특별하다. 그의 어머니는 경북 왜관 시장에서 ‘대구만물상회’를 운영하면서 홀로 다섯 남매를 키웠다. 남들이 가게 문을 닫고 난 후에도 어머니는 좌판 앞에서 꾸벅꾸벅 졸면서도 가게 문을 닫지 않았다고 한다.

“대학 갈 때까지 공부하란 말 한 번 하지 않으셨어요. 덕분에 독립적으로 자랄 수 있었죠.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의 시간들이 지금 사진을 하게끔 하는 힘이고 밑바탕입니다.”

연세대 의생활학과에 다니던 딸이 사진가의 길을 가겠노라고 했을 때도 어머니는 “너의 인생이니 스스로 결정하라”고 단호히 말했다고 한다. 강한 여성이었다. 셋째 딸인 조선희 작가는 그런 어머니를 닮았다. 조 작가의 어머니가 혼자가 됐을 때는 마흔둘, 지금의 그와 두 살 차이다. 이번 작업을 함께한 여성들도 대부분 비슷한 또래들이다. 조 작가는 “한명 한명을 담아내는 과정이 결국은 자화상을 찍는 작업이었다”고 밝혔다.

처음부터 흔쾌히 작업을 맡은 건 아니었다. 80여일간의 작업 일정을 내는 일도 거의 불가능했지만, 그보다도 현장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찍는 일은 다큐멘터리 작가가 해야 할 일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조선희 작가가 유명인이 아닌 일반인들을 모델로 세우고 몇 달 동안 몰입해서 작업을 진행한 경우는 드물었다. 이런 조 작가의 마음을 움직인 건 서울시 가회동으로 출사를 나갔다가 우연히 만난 희망가게 담당자 배현주(33) 팀장과의 대화였다. 설명을 듣고 조 작가는 이번 작업은 어머니로서 공감할 수 있는 여성이 카메라를 잡아야 한다 생각했고, 다시 생각해 보니 딸이기도 하고 엄마이기도 한 자신이 바로 적임자였다.

작업은 쉽지 않았다. 100명의 대상자를 모두 찍고 싶었지만, 대상자들의 허락을 받아내는 일부터 난관이었다. 자리를 잡았다고는 하지만 한부모 가장 여성들이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는 일은 역시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성공한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비슷한 상황에 놓인 다른 여성들에게 희망의 증거가 되어 달라”는 말로 설득하면서 대상자들을 물색했다. 처음에는 실명을 드러내는 데 난색을 보이던 이가, 촬영 후 마음을 바꿔 가명을 쓰지 않고 본인을 그대로 드러내겠다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조선희 작가는 “그 하나의 변화만으로도 난 만족한다”고 말했다.

사진 작업에는 가로 4인치(10.16㎝), 세로 5인치(12.7㎝)의 필름이 들어가는 대형 카메라를 사용했다. 피사체가 자세를 잡고 고정한 채로 있으면 사진가가 필름을 끼운 뒤 검은 막을 뒤집어쓰고 찍어야 하는, 흔히 옛날 사진관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카메라다. 이유가 있었다.

첫 작업은 대구 밸리댄스 학원 사장이었는데, 디지털 카메라로 진행했다가 모두 엎고 재촬영을 감행했다. 너무 예쁘게 나와서였다. 전문 모델과는 다른, 일반적으로는 갤러리에 걸리기 힘든 생활 속의 사람들을 작품으로 재창조해내기 위해 찾아낸 방법은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접근하는 전통적인 방식이었다. 고전적 촬영 방식을 택하다 보니 갖고 다녀야 하는 장비도 만만치 않아 비행기를 타지 못하고 부산, 광주 등지를 하루 7시간 이상 차로 달려가야 하는 일도 흔했다. 모델이 된 여성들의 생업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가게 문을 여는 9시 이전에 촬영을 진행해야 했고, 이를 위해 전날 밤 출발해 현지에서 대기하는 일도 여러 번이었다.

기름때 묻은 절단기, 날이 선 칼, 8년 넘게 써온재봉가위 등 희망가게 창업주들이 일하는 데 쓰고 있는 도구들도 일일이 받아 오거나 전국에서 우편으로 전달받아 스튜디오 촬영을 진행했다. 그네들의 생계를 책임져 주는 가장 소중한 수단이면서 동시에 아이들의 꿈이 담겨 있는 물건이기에, 실물 그대로를 오롯이 사진으로 담아내고자 하는 의도였다.

희망가게 창업주들과 함께한 조선희 작가의 작품은 ‘두 개의 상像’이라는 이름으로 오는 6월 29일부터 일주일 동안 인사동 노암 갤러리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두 개의 상像’은 희망가게를 시작하기 전과 후의 두 가지 시선을 내포하고 있다는 뜻에서 붙인 제목이며, 관람비는 무료다.

글 조성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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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내 엄마 닮은 싱글맘들에게 ‘희망선물’ 줄래요”

한부모 여성가장 29명 모델 삼아
조선희씨 ‘100호 희망가게 사진전’

“싱글맘들이 ‘여전사’처럼 자신만의 무기를 들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담고 싶었어요.”

장동건·비·장나라 등 유명 연예인들의 화보를 주로 찍어온 사진작가 조선희(41·사진·경일대 교수)씨가 29일 서울 인사동 노암갤러리에서 이색 사진전 ‘희망가게, 두개의 상상(象)’을 개막한다.

이 전시는 아름다운재단이 2004년부터 문을 연 ‘희망가게’ 100호점을 열면서 기획됐다. 희망가게는 한국형 무담보 소액대출(마이크로 크레디트) 사업으로, 재단은 한부모 여성 가장들에게 1인당 4000만원까지 창업자금을 대출해준다. ‘희망가게 사장들’을 찍은 이 작업에 대해 조씨는 “그들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고, 6살짜리 아들을 둔 어머니로서 동질감도 느꼈다”며 “우리 어머니도 아버지를 여의고 홀로 다섯 남매를 키우셨기 때문에 남일 같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조씨는 80여일 동안 서울·대구·대전·부산·광주·경기 등을 돌며 음식점·미용실·세차장·재활용센터 등을 운영하는 29명의 여성 가장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스튜디오에 불러 헤어·메이크업을 한 뒤 재촬영도 했다. 까다로운 4×5인치 대형 필름카메라를 썼고, 그들의 ‘무기’인 국자, 다리미, 식칼, 가위 등도 조명 아래에서 정성껏 찍었다. 그 결과 카리스마 넘치면서도 미묘한 여성 가장들의 시선이 한국 페미니즘 사진사에 기록될 만한 작품으로 탄생했다.

희망가게 사업 또한 ‘재탄생’을 낳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창업자 고 서성환 회장의 가족들이 기탁한 유산 중 일부가 씨앗이 된 이 기금으로 8년 만에 전국 100곳의 가게가 생겼고, 이들의 평균 생존율은 80%에 이른다. 상환금은 또다른 여성 가장들의 창업을 돕는다. 도돌이표처럼 여성들이 다른 여성들을 돕는 셈이다.

이 ‘여전사들의 도돌이표’에 뜻을 보태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는 조씨는 “전시 준비를 하면서 세상과 더불어 살아가야 된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02)3675-1240.

글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사진 조아조아스튜디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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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NEWS]  여성 창업지원 프로그램 ‘희망가게’ 100호점

 

◀ANC▶

남편과 이혼 또는 사별한 뒤 혼자 자녀들을 힘들게 키우는 여성들에게 창업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생긴 가게를 ‘희망가게’라 부르는데요, 지난 2004년 1호점이 생긴 이후 어느새 100호점이 생겼다고 합니다.

양효걸 기자입니다.

◀VCR▶
비오는 이른 아침부터
가게에 들어서는 최경인 씨.

◀ EFFECT ▶
“네, 세트 2번이면
후라이드하고 간장인데요…”

밀려드는 주문에 재료를 준비하고,

양념을 버무리고, 튀기고
옮겨 담는 손길이 분주합니다.

직접 오토바이로
배달까지 마친 뒤에야
겨우 물 한모금을
털어넣을 정도로 바쁜 생활.

그래도 최씨에게는
지금의 생활이 너무나 소중합니다.

7년 전 남편과의 이혼,
그리고 아버지의 갑작스런 별세로
살아갈 길이 막막했던 최 씨.

이제는 아름다운 재단의 도움을 받아
‘희망가게 100호점’을 운영하는
새내기 사장님입니다.

◀INT▶ 최경인/’희망가게’ 100호점 운영
“아빠 돌아가시기 전에까지
자리 잡는 모습을 보여 드렸어야
하는데…일단 내 가게가 있구나,
내 장사구나..”

희망가게 3호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복임씨.

7년 전 가게 문을 처음 열 때만해도
은행 빚이 쌓여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갚았습니다.

◀INT▶ 김복남/’희망가게’ 3호점 운영
“예전엔 정말 요구르트 하나도
사주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그래도
학원도 보내고…”

지난 2004년부터 시작된
‘희망가게’는 남편없이 자녀들과
혼자 지내는 여성들에게
보증이나 담보 없이
연 2% 낮은 이율로 창업자금
4천만원을 지원합니다.

생활 의지와 사업성을
꼼꼼히 심사하고 개점한 뒤에는
전문가가 돌봐주다 보니
요즘같은 불경기에도
대출금 상환율은 무려 85%에
달합니다.

이렇게 빌려줬던 돈이
다시 기금으로 돌아오면
또 다른 가정의 자활을 돕게 됩니다.

◀INT▶ 윤정숙/아름다운 재단 상임이사
“자신들이 도움을 받았지만
창업에 성공해서 자기들이
기부자가 되고 나누는 사람이
되었다.”

한 기업인의 기부로 시작된
‘희망가게’의 나눔은
이제 100호점을 넘어
또 다른 희망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MBC뉴스 양효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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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신사] ‘희망가게’ 파이팅!


【서울=뉴시스】박동욱 기자 = 29일 오후 서울 인사동 노암갤러리에서 아모레퍼시픽 후원으로 열린 ‘희망가게 100호점 오픈기념식 및 조선희 작가 사진전’에 참석한 (왼쪽부터)서경배 아모레퍼시픽 대표이사, 박상중 아름다운재단 이사장, 조선희 사진작가, 윤정숙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가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fufus@newsis.com

 

 [동아일보] 눈물 속의 기념식…여성가장들 희망의 끈을 잡다

“지금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의 소원은 빨리 커서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돈을 버는 것이었어요.”
“아이를 낳고 3개월 후부터 쉬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마이크를 잡은 사람도, 그들의 말을 듣는 사람도 눈물을 흘렸다. 행사 진행 요원들의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하루 종일 장맛비가 내린 지난달 29일 오후 4시. 서울 종로구 인사동 노암갤러리에서 여성 가장들을 위한 ‘희망가게’ 100호점 개업 기념식이 열렸다.

희망가게는 생계가 어려운 여성 가장들에게 창업 자금을 대출해주는 마이크로 금융 프로그램(상자기사 참조). 아름다운재단이 가구당 최고 4000만 원을 연리 2%에 융자해 준다. 희망가게는 2003년 고(故) 서성환 아모레퍼시픽 창업자 유족들이 기부한 50억 원으로 출발했다.

○ 만물상 하며 5남매 키운 어머니

이날 행사는 희망가게 100호 개업을 기념한 사진작가 조선희 씨의 전시회(‘희망가게, 두 개의 상像’)와 함께 열렸다. 조 씨는 광고와 연예 분야에서 손꼽히는 사진작가다. ‘연예인이 가장 선호하는 사진가’로도 불린다. 그는 4월 17일부터 전시회 직전까지 70여 일 동안 전국에 있는 희망가게 여사장 29명의 사진을 찍었다. 기념식 4번째 연사로 그가 앞으로 나섰다.

“대구에서 첫 촬영을 하고 두 번째인가 세 번째였던 것 같아요.”

갑자기 그가 목이 메어 말을 하지 못했다. 가까스로 감정을 다잡고 말을 이어갔다.

“아이들 셋과 할머니가 계시는 미용실이었어요. 순간 우리 어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조 씨의 어머니는 그가 중학교 1학년일 때 혼자 몸이 됐다. 마흔둘, 지금의 그보다 딱 한 살이 많을 때였다. 어머니는 경북 왜관 시장에서 만물상을 하며 5남매를 키웠다.

“저도 한부모가정에서 컸거든요. 25년 동안 장사하는 어머니를 보고 자랐어요. 저희 집에선 양말부터 속옷, 물엿까지 안 파는 게 없었어요. 하지만 처음엔 프로젝트를 거절하려고 했습니다. 전국을 다 돌아다녀야 하는 데다, 또 한번 하면 잘해야 하잖아요. 심적인 부담이 컸습니다. 그렇지만 일하는 여자, 한 아이의 엄마로서 이런 일은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진을 찍다 보니 열정에 더 불이 붙었다. 그는 다른 스케줄을 거의 미뤄둘 만큼 희망가게 프로젝트에 매달렸다.

자신의 어머니처럼, 세상에 맞서 가족을 지키는 어머니들의 모습을 찍고 싶었다. 그래서 처음 찍었던 두 사람의 사진을 다시 촬영했다. ‘너무 예쁘게’ 나왔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한부모가정 출신이다 보니 희망가게 여사장들에 대한 이해도 깊었다.

“희망가게는 싱글맘의 인생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삶까지 바꿀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나쁜 길로 빠지지 않고, 더 긍정적이고 큰 사람이 되게 돕는 것이죠.”

조 씨의 말은 우연히도 잠시 후 아름다운가게 상임이사인 윤정숙 씨에 의해 추가로 설명됐다. 윤 씨는 ‘가난은 여성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미국의 보건 행정가 헬렌 게일 씨의 말을 인용했다. 여성 가장이 빈곤의 중심에 있다는 뜻이다. 여성 한부모가정의 아동 빈곤율은 평균의 3배, 소득은 남성 가구주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희망가게 프로젝트가 생긴 이유다. 게일 씨는 “가난은 여성의 얼굴에만 새겨지는 게 아니라, 그들이 낳은 자녀들에게도 낡은 옷처럼 대물림된다”고 지적했었다.

○ 희망가게 89호 미용실의 사연

문현정 씨는 광주 광산구에서 미용실을 운영한다. 조선희 씨의 눈시울을 붉히게 만든 사람이 바로 문 씨다. 그는 2009년 남편 사업 실패와 그로 말미암은 음주, 외도로 가정불화가 생겨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했다. 지금 24개월인 막내가 태어난 직후였다. 남편은 이혼판결이 나기도 전에 전셋돈을 빼갔다. 문 씨와 갓난아기, 지금은 초등학생, 중학생인 두 딸은 갈 곳이 없었다. 수중에 남은 돈이 한 푼도 없었다. 과거를 정리하겠다는 마음으로 남편에게 모든 것을 내줬기 때문이었다. 문 씨가 운영하던 미용실을 처분한 돈은 이미 남편의 사업 밑천으로 들어간 후였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는 10월 말인가, 11월 초 즈음이었다. 보다 못한 스리랑카 출신 외국인 노동자가 고향에 보내려고 모은 ‘피 같은 돈’ 500만 원을 빌려줬다. 예전에 몸을 다쳤을 때 문 씨가 큰 도움을 준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네 모녀는 그 돈으로 몸을 누일 거처를 마련했다.

미용실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생계를 꾸려가던 그에게 희망의 빛이 다가왔다. 복지관 직원이 희망가게란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것이다. 당장 신청을 해서 서류심사와 면접을 통과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초 희망가게 89호인 미용실을 열었다.

중학생 큰딸은 엄마를 무척 자랑스러워한다.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는 딸은 기말고사를 빠지고 희망가게 행사에 오려고 했다. 기차를 타고 서울에 오려면 시험을 볼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실력이 아깝다는 담임선생님의 만류로 엄마와 딸들(중학생 큰딸과 초등학생 둘째 딸)은 난생 처음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표는 할부로 끊었다.

“장사는 잘되세요”란 기자의 질문에 문 씨는 “우리 동네에만 미용실이 10곳이나 돼요. 단골들 덕분에 그냥저냥 유지는 하죠”라고 답했다. 그의 미용실은 세 딸과 어머니의 생계를 책임져 주는 소중한 삶의 터전이다.

생활은 어느 정도 안정이 됐지만, 문 씨는 어머니가 자꾸 마음에 걸린다. 그의 어머니는 딸의 이혼 소식을 듣고 쓰러진 후 치매를 앓고 있다. 모든 기억이 쓰러진 그날을 기점으로 멈췄다.

“미용실로 돈을 벌어 얼마 전에 중고차를 샀어요. 쉬는 날이면 어머니랑 김밥 두 줄을 사서 짧은 여행을 갑니다. 너무 마음이 아프고 죄송하지만 이젠 어머니의 치매가 남은 시간 동안 효도하라는 뜻인 것 같아요.”

어머니가 7월부터 데이케어 센터에 나간다며 기뻐하는 그녀에게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 구경이나 하시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서울 지리를 몰라서…”란 대답이 돌아왔다. 다음 날 전화를 하니 기차 시간 때문에 제대로 구경을 못했다고 했다. 그래도 아이들은 서울 나들이를 좋아했다고 한다.

“어머니와 아이들이 제겐 큰 힘이 됩니다. 희망가게는 어두운 터널 속에 있던 제게 새로운 빛을 주었고요. 이젠 행복하게 살 자신이 있습니다. 저와 같은 여성들에게 희망가게가 좀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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