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소설 [영희의 약속]

희망가게 최영희 사장의 삷을 바탕으로 새롭게 태어난 초미니 트위터소설.
아름다운재단 트위터를 통해 100회 분량으로 연재됩니다.
과연 영희의 약속은 무엇일까요? 해쉬태그 #hope_store 를 검색해 보세요.

<영희의 약속>을 이어갈 101번째 희망가게 만들기.
당신이 함께 해줄 것을 믿습니다.

1. 청바지 엉덩이에 또 구멍이 났다. 지난달 기웠던자리 옆이군.
쳇, 차라리 하의실종을 만들어 버렷. 동이한테 물려주려고 했는대
이래서야 녀석이 받겠나. 영희는 뚫어진 바지구멍에

2. 손가락을 넣고 엉덩이를 만지작거리다 시계를 본다. 오후 5시. 가방을 챙겨야 겠군.
한 시간 뒤에 강의 시작이다. 작년, 불혹을 앞두고 빚 갚는 마음으로 대학에 들어갔다.

3. 잔업이 있긴 하지만 더 이상 시간을 끌었다간 지각이다.
영희는 컴퓨터를 끄고 난방기에 전원을 뽑았다.
화재보다 전기요금이 더 무섭다. 벚꽃 날리는 봄이 와도 사무실은 춥다.

4. 보증금 2천만원에 월 1백만원. 영희의 사업장은 충무로에 있다. 직원 한명과 영희.
사장이라하기 뭣해 직함은 실장으로 한다. 영업에서 디자인, 세무까지 전천후 실무형 사업가다.

5. 현장에서 익힌 기술로 창업을 해  4년을 버텨왔다.
그 사이 파산면책정보 관리기간도 끝나 다시금 금융거래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의 이름으로 된 통장을 다시 만들게 되다니. 

6. 누구에겐 흔하디 흔하게 만들 수 있는 통장으로 인해 영희는 그 간격었던
어려운 시절의 고통을 다시금 곱씹게 됐다. ‘통장이다. 내 통장.’

7. 지하철을 한번 환승하고, 버스로 다시 한번 갈아타 1시간 만에 대학에 도착했다.
봄 기운에 들썩이는 대학 캠퍼스. 영희는 저 사이에 섞여 볼 틈도 없이 매번 강의실로 향한다.

8. 강의실 안. 영희는 단연 돋보인다. 나이로나 열정으로나.
그녀 나이 반토막의 어린동기들 틈에서도 전혀 뒤지지 않는다.
다들 대단하다 하지만 정작 영희는 강의가 있는 날이면

9. 심장이 두근거린다. 두렵고 숨차서. 이 길을 걸어가는 게 너무도 버거워 때려치고 싶은 적
숫했다. 하지만 동그란 눈으로 지켜보는 동이를 떠올리면 매번 재자리로 돌아오곤 한다.

10. 9살 동이. 동이는 영희의 나침반이다. 영희의 딸. 누가봐도 그녀 딸이라고 찍을 만큼 생김새며
하는 양이 빼다박았다. 하지만 영희는 동이가 자신의 인생만큼은 닮지 않길 바램한다.

11. 2002년. 미국 부시대통령이 정초부터 북한, 이란, 이라크를 ‘악의 축’으로 규정해 햇빛을
얼어붙게 했지만. 한반도엔 월드컵 열풍이 불어 붉은악마들이 와르르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12. 장마가 시작될 무렵 효순이 미선이 추모로 전국이 촛불을 지피고. 희망돼지가 노무현 대통령을
낳는 기적이 일어 났지만. 달걀 한판 꽉 채운 내 인생은 새로울 것도 특별할 것도

13. 없이 밋밋하기만 하다. 친구의 소개로 만난 남자친구 명석 역시 무색 무취다. 세상은 이렇게
펄럭이는대 난 왜이리 심심할까. 뚱한 나에게 명석이 묻는다 “제부도에 바람쐬러 갈까?”

14. 만조로 찰랑이는 바닷가. 무겁고 낮은 구름이 바다와 맞닿아 있어 해변에 서 있자니 거대한
수정 구슬 속에 들어와 있는 듯 하다. 짙고 깊은 색감에 심드렁한 마음에 울렁증이 인다.

15. 명석은 제부도 간장게장과 바지락손칼국수는 꼭 먹어 봐야 한다며 바다는 안중에도 없다.
이 멋 없는 사람아. 사람이 밥만 먹고 사냐. 하늘도 보고, 구름도 보고, 바다도 좀 봐야지.

16. 하지만 영희에게 명석은 뜨겁거나 운명적인 무엇이라 느끼진 않지만, 서른을 맞이하며
사뭇 의기소침해진 자신을 쓸쓸하게 떨궈놓진 않는 제법 의리 있는 사람 쯤으로 보였다.

17. 그 나물에 그 밥이라 했던가. 영희에게 명석은 딱 그랬다. 밤사이 하늘이 천둥과 폭우로
한바탕 신경질을 부리고 난 아침 영희는 생각했다. ‘세상 남자 별거 있어. 다 거기서 거기지.

18. 결혼할까바’ 그렇게 영희과 명석은 제부도에서 첫날을 맞았다. 청명하게 갠 하늘이
왠지 좋은 기운을 가득 몰고 오는 듯 해 영희는 괜찮은 출발이라고 내심 마음이 놓였다.

19. 2003년. 동이를 낳았다. 꼬물꼬물 조그만 녀석. 280일 동안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다 퉁퉁부은
얼굴로 나를 대면하다니. 쿠하하 녀석 외모따윈 신경쓰지 않을꺼 같다. 아이고 내새끼.

20. 동이는 태어나 하루만에 물기가 쪽 빠져 홀쭉해지더니 일주일만에 뽀얗고 동그랗게
살이 일었다. 거기다 나를 닮아 완전 하얗다. 거기다 손대면 순간 허물어 질꺼 같은 순두부랄까.

21. 영희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이처럼 자신도 성장하고 있음을 어슴푸레 느꼈다.
살면서 전혀 알지 못했던 문을 통과해 새로운 세상으로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기분랄까.

22. 동이를 낳고 일은 그만뒀다. 뭐 대단할 것 없는 직장이 었으니 미련따위는 남지 않았다.
살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일도 재미있고 실상 나 아니면 이 일을 맞을 사람도 없었으니.

23. 그 사이 명석도 직장을 그만두고 선배와 함께 사업을 시작했다.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몰랐다. 동업한다는 선배도 가끔 봤던 터라 별 거부감이 없었다. 단지 불만이라면

24. 퇴근시간이 아주 늦어지고, 주말이건 휴일이건 얼굴 보기 힘들어졌다는 정도. 그래서
동이와 나만 보내는 시간이 곱절로 늘어난 듯 해 다시 마음이 심드렁하기 시작했다는 정도.

25. 2005년 겨울. 동이가 3살 나던 해. 동이 아빠가 경영하던 회사가 망했다. 애 아빠는 집을 나가
연락이 끊기고 지독히 무서운 채권추심원들만 집 앞을 지켰다. 낮이고 밤이고 언제나.

26. 무서워서 집 밖을 나가지 못했다. 밤이면 그들이 문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잘 수도
불을 켤 수도 없었다. 전화가 울리면 소스라치게 놀라 심장이 멎어 버릴 꺼 같아 자그마한 동이를

27. 끌어안고 숨죽여 울었다. 가스가 끊기고 수도가 끊기고 전기까지 끊겼다. 도시 한복판에서
원시의 삶을 살아 본적 있는가? 그것도 겨울에. 두려움을 잊기위해 세상의 문을 닫았다.

28. 창도 문도 마음도 닫았다. 그렇게 지내기를 한 참. 어느날 눈을 떠보니 옆에 바짝 말라버린
동이가 누워 잠들어 있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났다.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29. 몸을 추스리고 동이를 안았다. 종이장처럼 가벼워진 아이. 다시 눈물이 왈칵 솟았다.
아이를 업고 창문을 모두 열어 청소를 시작했다. 집안에 음울한 기운은 모두 몰아 내려는 듯.

30. 하지만 세상밖으로 나가는 건 여전히 두려웠다. 큰소리가 조금만 나도 화들짝 놀라
어깨가 움츠러들고, 누군가 지켜보고 있는 듯 불안했다. 그래도 이렇게 계속 숨어 있을 순 없다.

31. 동이 아빠는 연락이 닿지 않고. 결국 내가 해결해야 한다. 처음 찾은 곳은 은행.
집에 있던 통장을 모두 가지고 갔다. 하지만 모두 거래정지. 심지어 내 앞으로 어마어마한 빚이

32. 있음을 알게 되었다. 사업을 하면 내 명의로 돈을 끌어다 쓴 것이다. 내겐 이렇다 말 한마디
없이.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사업의 어려움을 이해하기 보다 야속함이 앞섰다.

33. 이곳 저곳 수소문 끝에 이혼청구 소송을 하고, 채무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파산면책을
신청했다. 당장 급한 불을 끈 샘이다. 하지만 그 다음은 생각하지 못했다. 파산면책자가

34. 이 땅에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주민등록번호 저 깊숙이 파산코드가 심어지면서
일반적인 은행거래는 물론 신용카드 발급신청이 거절된다. 신용대출은 말할 것도 없고

35. 담보대출 마저도 거절된다. 이렇게 5년이 지나야 파산면책정보가 삭제된다. 신용사회에서
빚 탕감을 전제로 신용없음 도장을 꽝꽝꽝 받는 것이 다시 일어서는대 도움이 될 걸까?

36. 아무튼 영희는 채권추심원들로 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동이와 편히 잠들고 눈뜨고 싶었다.
신용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전쟁같은 겨울 끝에서 영희는 차가운 봄을 맞았다.

37. 2006년. 동이는 어린이집에 맡기고 닥치는 대로 일했다. 하지만 비정규직에 일용직으로는
생계를 이어갈 수 없었다. 결혼 전에 했던 회사를 찾았다. 작은 일감을 건건이 받아.

38. 아르바이트로 수입을 늘렸다. 그래도 여전히 집 월세와 어린이집 보육비를 내고 나면
남는 돈이 없었다. 이대로 살 순 없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이 경력에 이 나이에 내가

39. 으리번쩍한 곳에 취직하는건 하늘에 별따기. 그렇다고 돈이 없으니 장사는 할 수도 없고..
동이와 내 인생은 이렇게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것인가. 영희는 빛이 보이지 않았다.

40. 그러다 동사무소를 찾았다. 동이 어린이집 선생님이 사정 얘기를 듣곤 보육비 지원신청을
해보라 권했기 때문이다. 쭈삣.쭈삣. 어느 창구로 가야하나. 사무적이고 딱딱한 분위기.

41. 법원이나 동사무소나 관은 느낌이 다 비슷하다. 복지담당 앞에 서서 보육비 지원 얘기를
꺼냈다. 한부모가족지원대상에 먼저 신청을 해보란다. 그 다음 수급도 신청하고. 다 뭐라나.

42. 보기보다 친절한 복지담당자. 그의 도움으로 한부모가족보호대상에 올랐다. 아이가 학교에
다니지 않으니 급식비 지원같은건 나중에나 쓰일 건이고. 당장 보육비가 일부 지원됐다.

43. 돈 굳었다. 음. 세금이 이렇게 쓰이는구나. 한결 짐을 던 듯싶다. 그래도 월세나 생활비를
대기에 빠듯하다. 수급이란게 되면 생활비도 나온다는대.. 이건 언제 어떻게 신청해야하나.

44. 복지담당에게 좀 더 차근히 물어봐야겠다. 이렇게 마음 먹고 동사무소를 다시 찾았다.
그리고 그를 기다리는 동안 그의 컴퓨터에 떠있는 노랑나비를 봤다. 그리고 주황나무도.

45. 한부모여성가장에게 창업자금을 대출해 준다는 내용이었다. 연 2%? 설마? 잘 못 봤겠지.
아니다. 맞다. 2%다. 세상에. 여기 뭐하는 곳인가? 사기일까? 사기라면 동사무소 직원이

46. 모니터에 띄워 두지 않았을꺼다. 갑자기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영희는 마우스에 손을
가져가 스크롤을 내렸다. “기본재산기준의 150% 이하인 한부모 여성가구주” 나다.

47. “구체적인 창업의 계획을 갖고 있는 여성 가구주” 나다. “19세 이하의 미성년 자녀의
부양을 책임지고 있는 한부모여성가구주” 나다! 세상에. 그래도 난 신용불량인대.. 안될꺼다.

48. “창업 운전자금 및 점포 임대보증금 포함 최대 4,000만원까지 지원” 거기다 운전자금
2천만원에 해당한는 부분만 이자. 그것도 2%. 5년 상환.. 4천만원.. 자꾸 심장이 떨려온다.

49. 접수기간이 앗 내일이 마감이다. 이런. 안되겠다. 포기하려는 순간 복지담당이 왔다.
자신의 모니터 앞에서 얼굴이 상기되어 있는 날 보며 바로 모니터를 본다. “아- 희망가게요?”

50. 내일이 마감이지만 빨리 준비하면 신청 할 수 있을꺼 같다고 복지담당이 더 열을 올린다.
그리고 전화통을 붙잡고 전화를 건다. 3675-1240. 뚜뚜뚜. 통화중이다. 마감이라 전화통에

51. 불이 났나보다. 다시 전화. 뚜뚜뚜. 또 전화. 그리고 연결. “안녕하세요. 아름다운재단
희망가게입니다” 하도 전화를 많이 받아 갈라진 목소리. 그래도 나긋나긋한게 따뜻하다.

52. “신용불량입니다. 되나요?” 영희의 최대 아킬레스. 그래고 집고 넘어가야 한다. 돌아오는
답 “파산면책 받으셨나요?” 그렇지. 그럴 줄 알았어. 또 코드가 발목을 잡는구나. 영희는

53. 풀이 죽었다. “네”. 그러자 전화선 넘어로 말도 안되는 답변이 돌아 왔다. “됩니다. 면책
받으셨으면 돼요.” 영희는 너무 놀라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바로 외쳤다. “저. 되는군요!”

54. 퇴근시간이 다 되도록 복지담당은서류를 뽑고, 직인을 찍고, 스템플러로 찍어 묶는다.
그리곤 내게 서류 뭉치를 한다발 안겨주었다. “신청서랑 계획서는 영희님이 쓰세요. 제가 

55. 도와드릴 수 있는 건 여기까지 입니다.” 영희는 서류다발을 건내는 그의 손만 뚫어지게
바라봤다.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또 다시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56. 밤 사이 아름다운재단 홈페이지를 찾아보고, 희망가게 사업도 다시 읽어 봤다. 그리곤
신청서와 사업계획서를 썼다. 내가 할 줄 아는 거라고 컴퓨터 뿐이다. 그리고 쓰고 붙이고.

57. 경기도 끝자락에 사는 나. 아름다운재단은 서울 한복판에 있다. 종로. 마감 전에 신청서를
접수하기 위해 직접 찾아갔다. 안국역. 2번출구. 2번 마을버스. 삼거리 하차. 길 건너편.

58. 막상 아름다운재단에 도착하니 낡고 자그마한 이층 양옥집이다. 이런 곳에서 대출금을
주다니. 또 믿어지지 않는다. 으리번쩍 할 줄 알았는대. 삐죽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한켵에

59. 서류봉투들이 쌓여 있고 그 앞에 [희망가게 서류접수] 손글씨가 보였다. 사람 얼굴
하나 안보고 쓰윽 놓고 가려니 영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목구멍에선 어떤 소리도

60. 밀려 올라오지 않았다. 결국 소심하게 봉투를 내려 놓고 돌아 나오려는 대 뒤에서 어느
이가 외친다. “희망가게 접수 오셨어요? 고맙습니다~” 떨결에 엉거주춤 돌아서서 꾸벅

61. 인사를 하고 허둥지둥 문을 나섰다. ‘고맙습니다?…’ 나한테 고맙다니.. 도움을 받겠다고
찾아온 난대.. 그런 내게 고맙다니.. 진짜 이곳은 뭔가 좀 이상한 곳인거 같다. 만약 사기라면?

62. 명석의 부도 이후로 사람을 믿지 못해 재차 일을 놓친 적이 있다. 트라우마라고 하던가.
내게도 생겼다. 불신의 트라우마. 영희는 만하루 꼬박 긴장하고 가슴 졸이다 맥없이 서류를

63. 놓고 나오니 기운이 쭉 빠졌다. 어디가서 시원한 생맥주 한잔 들이켰으면 딱 좋겠군.
영희는 머리 속에 몽실 솟구쳐 오르는 맥주크림을 걷어내고 터벅터벅 지하철로 향했다.

64. 일주일 후 전화가 왔다. 서류에 합격했다고 면접을 보러 오라는 안내였다. 세상에. 진짜
일까? 여전히 반신반의. 이틀 뒤 아름다운재단을 다시 찾았다. 빼곡이 차 있는 대기명단과

65. 명찰들. 스무명 남짓 되는 것 같다. 이렇게 많이 뽑나? 대기중인 사람들도 서류통과가
어렵지 면접은 요식행위로 생각해서 일까 별 긴장하는 기색이 없었다. 하지만 면접을 끝내고

66.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은 죽상이다. 면접이 만만치 않나? 오만생각에 정신이 어지럽다.
그리고 드디어 영희의 차례다. 면접실에 들어서니 5명이 ㄷ자로 책상에 앉아 있다. 이런..

67. 압도됐다. 순간 얼어붙어 영희는 면접관이 뭐라 질문하는지 처음엔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정신차려라. 영희 정신차려라. 영희는 잠시 머리를 흔들고 허리를 펴 몸을 곧추세웠다.

68. 어떤 질문에 무어라 답을 했는지 아득하다. 하지만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하진 않았다.
비록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올랐지만 힌소리는 안했다. 영희는 자신을 믿었다. 그리고 스스로

69. 잘했다고 토닥였다. 합리화가 아닌 격려를. 그리고 일주일 뒤 1차 면접을 통과 했다고
2차 면접을 받겠냐고 물어왔다. 이쯤 되면 못먹어도 Go다. 영희가 하려는 사업의 타당성을

70. 전문가가 분석하고 영희가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지 묻는다고 한다. 영희는 자신있었다.
그간 발품을 팔며 닦아온 거래처와 신뢰라는 총알이 영희 두손에 꼬옥 쥐어져 있기 때문이다.

71. 서류 아름다운재단에 슬며시 놓고나온지 한달. 드디어 발표날이다. 심장이 떨리고 손발이 저
려서 하루종일 핸드폰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드뎌 와따. “you’ve got mail”

72. [아름다운재단 희망가게사업에 선정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뭐야? 된거야? 진짜?
야~호~! 동이야 엄마 사장님 된다. 엄마 사장님 되는거야. 시작하자. 시작할 수 있어. 그치?

73. 2010년 12월. 영희는 아침에 출근해 메일함을 열고 주르륵 제목을 훓다가 문득 눈이 멈췄다.
“결식0(제로) 캠페인 – 결식아동을 위해 SOS를 보냅니다” 아름다운재단에서 보내온

74. 뉴스레터다. 무슨일이지? 메일을 열어보니 급식예산 0(제로)가 아닌 결식아동이 0(제로)
되는 사회를 꿈꾸며 십시일반 1%나눔 참여를 요청하는 내용었다. 얼마전 국회예산안이

75. 통과될때 두루뭉술 넘어갔던 결식아동의 급식비 전액삭감을 환기시키는 아름다운재단의
캠페인이었다. 세상에 애들 밥값까지 깍아서 강바닥 깍으려나. 왜이런대. 영희는 은행

76. 홈페이지를 띄우고 인터넷뱅킹을 접속했다. 내 점심값 4만원이랑 동이꺼 4만원. 애들 밥은
먹여야지. 사람들 하곤.. 영희는 혀를 차며 다시 메일창을 띄운다. 그리고 주문에 대한

77. 문의에 답변을 달고 전화기를 앞으로 끌어온다. 바로 업체에 전화를 걸어 어제 보낸 자료는
잘 받았는지 작업은 얼마나 진행 됐는지 확인하고 고객에게 문자를 넣었다. “곧 갑니다”

78. 새로 뚫은 거래처가 일을 박하게 준다며 직원 송씨가 투덜거린다. 작업기한 5일 주고
제품까지 뽑아내는 건 무리라는 걸 영희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첫 거래다. 첫 거래는 우선

79. 숙이고 들어가야한다는게 영희의 생각이다. 그래야 상대도 어디 해내나 보자 테스트하던
자세를 열고 거래량을 늘려가기 때문이다. 입이 백미터 나온 송씨에게 떡볶이와 뜨끈한

80. 어묵을 한 대접 안겨주며 영희는 너스레를 떤다. “고마워~ 내가 당신만 믿는거 알지?”
이미 3년을 같이 일해 온 송씨는 손도 빠르고 감도 좋다. 하지만 야근은 쥐약이다. 이땐 답이

81. 없다. 조르는 수 밖에. 지난 주 종강을 앞두고 담임교수님께서 학내사업을 하나 맡기셨다.
큰 건이다. 올해 마지막에 대박을 쳤다. 휴~ 올해도 마이너스는 면했다. 사업을 시작한지

82. 4년. 내년이면 5년차에 접어든다. 희망가게 창업 후 많은 일이 있었다. 우선 파산면책정보가
삭제됐다. 영희 이름으로 된 통장을 드디어 개설 할 수 있게 된것. 그리고 월세집에서

83. 전세집으로 이사를 갔다. 영희와 동이에게 이 집은 도곡동 타워팰리스가 부럽지 않을 만큼
단단하고 뿌듯함을 안겨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희는 늦깎이 대학생이 되었다.

84. 4년의 세월동안 영희가 제일 많이 들은 소리는 <독종>이다. 열이 펄펄나도 마감을 지켜내고,
영업을 할때 한번찍고 두번찍고 열번찍어도 안넘어오면 소개시켜줄 사람을 받아냈다.

85. 그러다 첫거래가 성사되면 바늘끝 같이 약속을 지켜냈다. 기한만 맞추는 건 의미 없다.
질도 보장해야한다. 그래서 영희보다 실력있는 직원을 채용했다. 비록 사업장 통장은 바닥이

86. 보여도 하청업체와 직원급여는 일분 일초는 늦추지 않고 바로바로 입금했다. 이렇게 쌓아온
신뢰는 일감으로 돌아왔고, 밀려있는 주문 속에서도 우선 순위로 제작되어 나왔다.

87. 영희의 성공은 기본에 있었다. 약속을 지키는 것. 꾸준히 지독하게 성실한 것. 그리고
나눔에 있었다. 수익이 생길 때 내 배를 먼저 불리지 않는 것이 바로 영희의 성공 노하우 였다.

88. 2011년 봄. 아름다운재단 희망가게팀 옥진씨에게 연락이 왔다. 영희에게 강의를 부탁하는
옥진씨. 일종에 사업설명회인대 창업을 준비하고 있는 한부모여성가장들에게 희망가게를

89. 창업한 선배로서 그리고 당당한 사업가로서 성공담을 확 질러달라는 내용이었다.
풀 죽어 있는 그녀들에게 삶의 영감을 불러넣어 줄 쎄근한 모델이 필요하다나. 옥진씨는 집요하다.

90. 옥진씨의 요청을 수락하고 막상 본인을 소개하는 자료를 만들려니 거참 낯이 화끈거린다.
뭔 말을 해야하나. 잘난척으로 보여져 활기를 주기는 커녕 재수없다 하면 어쩔것나..

91. 영희는 괜히한다고했어 괜히한다고했어 무릎을 찧었다. 그래도 이왕 할 꺼 확- 질르는 거야.
폼나게. 영희는 목차를 정하고 원고를 썼다. 그리고 똑딱이 디카를 꺼내 장부와 통장을

92. 찍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 파워포인트를 띄우고 영희는 자신의 소개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만들기 시작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엉덩이가 저려올 정도로 공들여 만들었다.

93. 뻐근한 다리. 의자 위로 양반다리를 하는 순간 부-욱~ 청바지 엉덩이 밑이 터졌다.
뭐야. 또야? 영희에게는 청바지가 네댓 개 있다. 그 중에서도 동이를 임신했을 때 샀던 펑퍼짐한

94. 청바지는 영희가 오래도록 입어 날근하고 피부처럼 편한 바지다. 때문에 편하디 편해서
항상 사무실에 두고 작업복으로 입는다.  그런데 이 청바지가 너무 낡아 여기저기 구멍이

95. 뚫리기 시작했다. 군데군데 누비고 기운자리가 생겨나더니 기어코 터졌던 자리 바로 옆이
또 터져버렸다. 이를 본 송씨가 한 마디 거든다. “그 바지 그만 입으세요. 돈 뒀다 뭐해.

96. 좀 사입어요. 누더기처럼 기운거 부끄럽지 않아요?” 하지만 영희는 씨익 웃으며
뚫어진 청바지를 둘둘 감아 가방에 넣기만 할 뿐 별 말이 없다. 그리고 조그맣게 읇조린다.

97. ‘여덟번 기워 입는 건 부끄럽지 않아.
진짜 부끄러운 게 뭔지 알아? 그건 누구도 널 믿지 않을 때 야.’
영희는 누구도 믿지 못하고, 누구도 자신을 믿어 주지 않던 그때 진정 부끄러웠다.

98. 삶을 살아갈 동기를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아무 조건없이 자신을 도와준
동사무소 복지담당과 아름다운재단을 만나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산다는 건 홀로 세상과

99. 등지고 살 수 없음을 깨달았다. 
나는 영희고. 동이에 엄마이기 때문에. 사람과 인연을 만들고 자신이 도움을 받았듯이
다른 이를 도우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슴깊이 심지로 박았다.

100. 그리고 영희는 희망가게를 시작하면서 그 심지에 불을 붙였다.
믿어. 난. 내가 품고 있는 이 촛불의 빛을 따라 희망을 찾게 될 이가 있을꺼라고.
자~ 오늘은 뭔 약속이 있나 볼까?

 

4 thoughts on “트위터소설 [영희의 약속]

  1. backboom says:

    벌써 70회가 지났네요!!!!! 다음편이 궁금해요! 이렇게 짧은 글 속에 희노애락이 다 들어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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